영화

회로 (回路, Kairo, Pulse) - 나는 언제 공포를 느낄까?

MoonLight314 2025. 4. 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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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oonLight입니다.

최근에 유명하지만 제가 아직 못 본 영화들이나 너무 예전에 봐서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영화들을 보고 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Kiyoshi Kurosawa)의 '회로(回路)'라는 영화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중에 저는 '큐어'라는 영화를 먼저 봤었는데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섬뜩했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에서 무미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그렇게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의 내공이라니...

'회로' 영화를 보기전에는 같은 감독의 다른 공포영화라는 점이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재 리뷰는 스포일러로 가득차 있습니다~

 

1. 기본 정보

제목 : 회로 (回路, Pulse)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Kiyoshi Kurosawa)

개봉년도 : 2001년

장르 : J-호러, 심리 공포, 테크노 호러, 존재론적 공포

주요 등장인물 : 쿠도 미치 (아소 구미코), 카와시마 료스케 (카토 하루히코), 카라사와 하루에 (코유키), 타구치 (미즈하시 켄지)

 

 

2. 줄거리

이 영화는 크게 2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옵니다.

식물 판매점에서 일하는 쿠도 미치 (Kudo Michi)는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 동료 타구치를 걱정하여 그의 집을 찾아가 봅니다.

어두침침한 집안에 우울하게 혼자 있는 타구치는 미치에게 직접 만든 플로피 디스크를 건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충격에 빠진 미치와 식물 판매점 동료들(준코, 야베)은 디스크의 내용을 확인해 보고는 무서움에 떨게 됩니다.

화면에는 타구치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그 모니터 안에는 다시 모니터를 응시하는 타구치가 보이는 무한 루프같은 그림과 함께 방 안을 배회하는 희한하고 기괴한 영상이 찍혀 있습니다.

이후 미치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둘씩 컴퓨터 화면 속 유령과 접촉한 뒤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 사라지거나 검은 얼룩만을 남기고 마치 타노스가 핑거스냅을 하면 사람들이 사라지듯이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미치는 점차 황폐해지는 도시 속에서 '열면 안 되는 방'에서 이상한 춤(?)을 추는 유령과 마주하며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저에게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최고의 공포장면이었습니다.

 

경제학부 대학생 카와시마 료스케 (Kawashima Ryosuke)는 새로 장만한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컴퓨터는 기괴한 사이트로 접속됩니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유령을 만나고 싶습니까?"(혹은 "도와줘")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나는데 오싹함을 느낀 료스케는 급하게 컴퓨터를 꺼버립니다.

불길함을 느낀 료스케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카라사와 하루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루에는 이 현상이 사후 세계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유령들이 인터넷 회선을 통해 현실 세계로 넘어오려는 현상일 수 있다는 당치도 않는 가설(?!)을 제시하는데, 료스케는 납득(!???!)하게 됩니다.

료스케 역시 주변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도시가 고립되어가는 것을 목격하며, 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단순한 괴담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두 이야기는 서로 교차하며 진행되지는 않지만, 동일한 현상(인터넷을 통한 유령의 침범과 그로 인한 인간 소외, 절망, 소멸)을 각기 다른 시선에서 보여줍니다.

결국 세상은 유령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소수의 생존자들은 폐허가 된 도시를 배를 타고 탈출하려 합니다.

영화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이렇게 서로 연결되죠.

미치와 료스케는 영화 후반부에 만나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미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절망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결국 료스케도 배안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3. 이런 저런 이야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이전 작품, '큐어'에서도 느꼈던 건데, 이 감독의 공포 영화의 특징은 일반적인 사람이 일상적인 부분에서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을 잘 캐치해서 잘 연출한다는 것입니다.

집, 직장, 학교, 거리 같은 곳에서 느끼는 공포. 늘 지나치면서 살던 곳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것에서 느끼는 공포.

보통 공포영화라고 하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나, 피칠갑을 한 괴물, 소복을 입은 귀신 등등을 생각할 수 있는 이 감독의 공포는 이런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 하지만, 제가 가장 공포를 느꼈던 장면은 귀신이 나와서 이상한 춤을 추는 장면이지만... )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너무나 흔한 지금 상황에서 보면 예전의 모뎀으로 하는 인터넷이나 2G 폰등은 추억이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감독으로 하여금 인간 소외와 근원적인 외로움이라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드러나게 하는 좋은 도구였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라는 미지의 네트워크가 막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하던 시기의 불안감을 포착하여, 스크린 너머의 존재가 현실 세계를 침범하는 과정을 서늘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려내려고 했던 시도가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화면 자체가 어둡고 칙칙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무겁고 암울하게 찍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특유의 거리 풍경과 함께 영화 설정상 사람들이 모두 유령이 되어버려서 한 사람도 없는 거리는 정말 음침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명확한 설명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모호하고 불길한 분위기, 의미심장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관객 스스로 공포를 상상하고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느린 호흡과 정적인 화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함, 인물의 표정 변화, 텅 빈 공간의 적막함 등은 직접적인 위협보다 더 강력한 심리적 압박감을 선사하고,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떨쳐내기 힘든 찝찝함과 불안감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만듭니다.

저는 이런 연출이야말로 감독의 내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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